비참한 십자가의 역설,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예술로 피어나다: 장재형 목사의 영적 미학론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그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공간 한편에는 짙은 어둠을 단번에 베어내는 강렬한 빛줄기가 캔버스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의 이단아이자 천재 화가인 카라바조가 남긴 불후의 명작, **‘마태의 소명’**입니다.

세관의 좁은 방 안에서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동전을 움켜쥐고 있던 세리 마태, 그의 굳게 닫힌 마음과 손가락 위로 그리스도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부르심이 빛의 폭포수가 되어 쏟아집니다. 이 극적인 명암의 대비는 한 죄인이 겪은 개인적 회심의 기록을 넘어선 사건입니다. 그것은 세속의 낡고 이기적인 경제 논리가 신성한 은혜의 질서로 완전히 뒤바뀌는 숭고한 찰나를 예술이라는 형식 속에 영원히 박제한 것입니다. 인간의 짙은 탐심을 뚫고 들어오는 신의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것은 차가운 교리의 문장을 넘어선 강렬한 미적 체험이며, 화석화된 영혼을 일깨우는 구원의 위대한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삼중 구원 서사’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초대교회 공동체의 역동적인 생명력 안에서 이와 같은 영적, 미학적 전복의 원리를 탁월하게 통찰해 냅니다. 그의 신학적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으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구원 서사를 단순히 성경 텍스트 속에 가두어 두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신비(Mystery)가 인간의 시간 속에 거대한 서사로 새겨진 사건’으로 재해석합니다. 그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구원론을 문학과 예술이라는 상상력의 차원으로 찬란하게 승화시킵니다.

구원의 여정 속에 담긴 빛과 어둠, 자기 비움과 충만한 채움의 역설은 단순한 성경 묵상의 차원을 넘어 회화와 문학, 음악이라는 ‘제2의 거울’을 통해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비춥니다. 그의 메시지 속에서 단테의 『신곡』은 차가운 지옥의 무지(無知)로부터 빛과 조화의 심포니를 향해 전진하는 웅장한 부활의 언어가 됩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인물들이 내뱉는 처절한 고백은 인간 공동체의 연대적 책임을 일깨우는 예언적 목소리가 되며, 바흐의 마태수난곡은 정교한 음표 위에 세워진 거룩한 십자가로 재탄생합니다.

특히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 묘사된 낡고 해진 누더기 옷과, 이를 감싸 안은 아버지의 빛나는 품의 대비를 통해 장재형 목사는 인류 보편의 수치를 덮어버리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조명합니다. 이처럼 복음이 평면적인 텍스트의 틀을 깨고 시각적, 청각적 미적 체험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현대인들의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은 다시금 뜨겁게 박동하기 시작합니다.


🌻 자기 비움(Kenosis)이 잉태한 황금빛 환대와 코이노니아

초대교회가 보여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급진적인 공유 경제의 모델은, 이러한 영적 미학이 추상적 관념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의 지평으로 내려온 가장 구체적이고 혁명적인 실천이었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 거룩한 나눔의 기저에 그리스도의 철저한 **‘자기 비움(Kenosis)’**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고 갈파합니다. 자본의 논리와 소유욕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공동체가 탐심의 사슬을 끊고 성령 안에서 온전한 한 몸을 이루는 기적은 법이나 제도의 강제가 아닌, 인간 내면의 감수성과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 회복될 때 비로소 만개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가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거친 붓터치로 구현해 낸 그 따스하고 찬란한 노란빛을 가리켜 **‘환대의 금빛’**이자 **‘나눔의 색채’**로 정의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사적인 소유의 문을 닫고 공적 교제의 따뜻한 식탁을 열었듯이, 고흐의 캔버스에 흐르던 그 빛이 이기주의로 얼어붙은 현대 도시의 밤을 밝히는 구원의 조명이 되어야 한다는 통찰입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본 영혼만이 끊임없이 움켜쥐고 소유하려는 ‘소유의 양식(Having mode)’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기꺼이 타인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나누는 ‘존재의 양식(Being mode)’이 주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 도시의 성전을 채우는 영원한 구원의 합창과 실천

나아가 이러한 미학적 감수성에 기반한 경제적, 윤리적 실천은 개별 교회의 담장을 넘어 지역 사회 전체를 향한 공공성의 차원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침묵 속에 초월을 대면하게 하는 마르크 로스코의 채플처럼 복잡한 도심 속에 영혼의 쉼터를 마련하거나, 차가운 거리와 화려한 콘서트홀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부활 교향곡이 울려 퍼지게 하는 창조적 기획은 교회가 병든 세상을 향해 건네는 가장 품격 있는 화해의 손짓입니다.

또한 장재형 목사가 제안하는 공동 기금 형태의 **‘연대 예산’**이나,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붓을 들어 낡은 담벼락을 채워가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라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21세기의 살아있는 문법으로 번역해 낸 대안적 목회의 모범입니다. 미학이 결여된 건조한 신학은 거룩함을 종교적 율법으로 얼어붙게 만들며, 반대로 신학적 중심이 거세된 미학은 십자가가 지닌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허무하게 증발시켜 버립니다.

“십자가는 가장 비참한 예술이며, 부활은 가장 찬란한 예술이고, 성령은 그 두 예술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새로 그려 넣는 화가입니다.” 장재형 목사의 이 묵직한 선언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은혜의 강물은 메마른 심령을 적시고 탐심의 굳은살을 부드럽게 도려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은 우리의 삭막한 일상 위에 새로운 생명과 나눔의 풍경을 부지런히 그려 넣고 계십니다. 이토록 눈부신 복음의 화폭 안에서, 당신의 남은 생애는 오늘 어떤 사랑의 색채로 채워지고 있습니까? 예술이 빚어낸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식탁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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